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구·미추홀구 을 (문단 편집) == 내력 == 인천부, 인천시 시절 제헌국회부터 제7대 총선까지는 당시 야권의 성지였다. 한때 자유당과 민주공화당에서 승리한 적도 있었지만 보통은 민주당계가 차지했다. 남구가 신설된 후에도 제8대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한다. 그러나 중선거구제가 실시되고 제9대 총선과 제10대 총선에선 여당 민주공화당이, 제11대, 제12대 총선에선 민주정의당이 앞섰으며 민주화 이후 치러진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도 민주정의당 [[이강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4대 총선에서 민주당 [[하근수]]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지만,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이강희, 제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안영근]]이 다시 당선되었을 만큼 20세기 후반엔 보수성향이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안영근]]이 열린우리당으로 옮기고, 제17대 총선에서 안영근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재선에 성공하며 다시 민주당 우세지역이 되나 싶었는데, 이후 제18대 총선에서 다시 한나라당 [[윤상현(정치인)|윤상현]] 후보가 당선되고, 19대 총선, 20대 총선, 21대 총선에서도 당선되었다. 특히 20대, 21대 때는 공천 탈락으로 윤상현이 무소속 출마하여 여야 후보들을 모두 누르고 당선되기도 했다. 이 지역구의 특이점은 당선되는 의원들마다 이적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특히 13, 15대 의원 이강희와 16, 17대 의원 안영근은 모두 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당선된 후 임기 도중에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적하였고, 14대 의원 하근수는 의원 임기 도중은 아니었으나, 임기 후에 한나라당-새누리당 계열로 이적했다. 18대부터 현직인 윤상현은 이적을 하지는 않았지만, 두번이나 컷오프되며 탈당-복당을 해야 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임기 중 남구가 [[미추홀구]]로 개명되었지만, 개편으로 현재의 이름인 '동구·미추홀구 을'이 될 때까지 '남구 을'이라는 이름은 유지되었다. ([[미추홀구 갑|남구 갑]]도 같았다.) 다만 실무상으로는 모두 이미 구명이 변경된 순간부터 '미추홀구 갑', '미추홀구 을' 이라는 이름으로 현수막에 쓰고, 그렇게 활동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동구가 붙으면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고, 단순한 '미추홀구 을'이라는 이름은 존재한 적이 없게 되었다. 다만, 동구는 역사적으로 항상 중구와 동일 생활권이었으나 중구와 동구 선거구가 분리되며 논란이 있기 때문에, 22대 총선 및 그 이후 원도심 지역구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존재하게 될 가능성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